트럼프의 무역전쟁 2.0: EU의 대응 전략과 미-EU 경제관계의 미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국제 무역 환경은 다시 한번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 최대 교역국인 미국과 유럽연합(EU) 간의 무역 관계가 긴장 상태에 놓이면서 글로벌 경제에 새로운 불확실성이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내각 회의에서 유럽연합에 대해 "일반적으로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특히 "자동차와 모든 것들"에 이를 적용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더 나아가 트럼프는 "유럽연합은 미국을 이용하기 위해 형성되었다"는 강경한 발언까지 내놓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EU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 교역관계인 미-EU 경제 관계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이번 글에서는 무역전쟁의 배경, EU의 대응 전략, 그리고 이것이 세계 경제와 한국에 미칠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겠습니다.
미국과 EU의 경제 관계: 균형과 상호의존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과 달리, 미국과 EU의 경제 관계는 실제로는 매우 균형적이고 상호의존적입니다. 전 EU 무역위원회 관리자 로베르트 슐레겔밀히(Robert Schlegelmilch)에 따르면, EU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로, 양측의 경제 관계는 고도로 통합되어 있습니다.
실제 데이터를 살펴보면, 미국이 EU와의 상품 무역에서 1,690억 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비스 무역에서는 1,170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를 합하면 총 균형은 약 500억 달러의 차이로, 연간 1.7조 달러 규모의 교역 관계에서 약 3%에 불과합니다. 이는 결코 "이용당하고 있다"고 할 만한 불균형이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투자 관계입니다. 미국과 EU가 전 세계에 투자하는 금액의 약 60%가 서로에게 향하고 있으며, EU의 대미 투자는 미국 내 약 350만 개의 일자리를 직접적으로 창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BMW 공장은 독일 뮌헨이 아닌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해 있습니다.
따라서 미-EU 경제 관계는 단순히 상품 무역수지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복잡하고 긴밀한 관계입니다. 이러한 깊은 경제적 유대를 고려할 때, 상호 보복적인 관세 전쟁은 양측 모두에게 손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트럼프의 관세 위협과 현재 상황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에 대한 여러 관세 조치를 준비하고 있거나 이미 시행 중입니다.
-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232조 관세가 2024년 3월 12일부터 발효될 예정입니다.
- 디지털 서비스세에 대한 조사: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EU 회원국들의 미국 기술기업에 대한 디지털 서비스세를 조사 중이며, 이에 따른 관세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상호주의 관세 조사: 4월 1일까지 진행되는 이 조사에 따라, 현재 미국보다 EU가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품목에 대해 미국도 동등한 수준으로 관세를 인상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추가 10% 관세와 멕시코,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를 발표하며 이번에는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실제 관세 부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었습니다.
EU의 대응 전략: 협상과 보복의 균형
EU는 첫 번째 트럼프 행정부 시기(2017-2021)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더 체계적인 대응 전략을 마련했습니다. 슐레겔밀히는 당시 EU가 두 가지 접근법을 사용했다고 설명합니다.
- 협상을 통한 해결: 2018년 EU는 미국으로부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위협을 받았을 때, 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와 대두를 더 많이 구매하는 조건으로 협상을 타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래(deal)"를 좋아하므로, 이러한 협상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 보복 관세: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미국의 관세에 대해서는 EU도 WTO 세이프가드 규정에 따라 자체 보복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이번에 EU는 이전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정책 도구인 '반강압 수단(Anti-Coercion Instrument, ACI)'을 개발했습니다. 이는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기 위한 도구로, 단순히 상품에 대한 관세뿐만 아니라 서비스, 정부 조달, 지적재산권 보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합니다.
ACI는 다음과 같은 절차로 작동합니다.
- 조사 단계: 경제적 강압이 있는지 사실 관계를 확립합니다.
- 협상 단계: 강압이 확인되면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시도합니다.
- 대응 조치 단계: 협상이 실패할 경우에만 광범위한 대응 조치를 취합니다.
이 도구는 아직 실제로 사용된 적은 없지만, 잠재적인 억제력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ACI가 단순한 관세 보복이 아니라 지적재산권이나 서비스 분야에서의 대응도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상품 무역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국가들에게 더 효과적인 대응 수단을 제공합니다.
EU의 외교적 대응과 제3국과의 관계
EU는 트럼프의 관세 위협에 대응하여 적극적인 외교 활동도 전개하고 있습니다. EU의 무역 및 경제안보 커미셔너를 비롯한 여러 고위 관리들이 미국을 방문하여 "비즈니스에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EU는 특히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 자동차 관세: EU의 승용차 관세가 미국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며, 이 부분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 방위산업: EU는 이미 미국으로부터 상당량의 무기를 구매하고 있으며, 현재 안보 상황을 고려할 때 이는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에너지: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EU는 미국 LNG의 최대 구매자가 되었으며, 이 분야에서 협력을 더욱 확대할 여지가 있습니다.
동시에 EU는 미국 외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 관계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뉴질랜드,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을 완료했으며, MERCOSUR(남미공동시장) 및 인도와의 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규칙에 기반한 개방적 무역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국가들 간의 연대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요소: 복잡한 삼각관계
미-EU 무역 관계에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는 중국입니다. 흥미롭게도 트럼프의 첫 임기 동안 EU와 미국, 일본은 "3자 협력(Trilateral)"을 통해 중국의 비시장 경제 관행, 특히 보조금과 과잉생산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협력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는 "무역기술위원회(Trade and Technology Council)"를 통해 의료기기, 공공조달, 사이버 위협 등 중국 관련 이슈에서 협력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철강과 알루미늄 과잉생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자발적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현재 중국은 EU에 외교적으로 접근하며, 미국의 관세 위협 상황에서 더 나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EU는 "차분한 머리(cool head)"를 유지하며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EU는 중국의 불공정 관행에 대응하되, 모든 중국의 행동이 불공정한 것은 아니라는 균형 잡힌 접근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최근 EU는 중국에 대해 더 비판적인 시각을 발전시키고 있으며, 반덤핑, 반보조금, 외국보조금규제 등 더 많은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4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피에르 피네 프랑스 재무장관은 중국의 수출 보조금으로 인한 "중국 충격(China shock)"을 위협으로 언급했습니다.
WTO와 규칙 기반 무역 체제의 미래
EU는 여전히 다자주의와 WTO를 통한 분쟁 해결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WTO 분쟁 해결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경제적 강압 상황을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EU는 ACI를 국제법, UN 헌장, 국가 간 협력 의무 등에 기반하여 개발했습니다. 이는 WTO만으로는 제공하지 못하는 도구와 조치를 가능하게 합니다.
중요한 질문은 미국과의 무역 갈등 속에서도 EU가 중국과 같은 공동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이전 경험을 통해 EU는 무역 갈등과 다른 영역에서의 협력을 어느 정도 분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국가와도 중국 문제에 협력할 의향이 있는지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향후 전망과 시사점
미-EU 무역 갈등의 향후 전개는 글로벌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몇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와 시사점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제한적 관세와 협상: 트럼프 행정부가 일부 품목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지만, EU와의 협상을 통해 포괄적인 무역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는 시나리오입니다. 이는 자동차, 에너지, 방위산업 등에서의 거래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 전면적 무역 전쟁: 트럼프가 위협한 대로 광범위한 25% 관세를 부과하고, EU도 ACI를 통해 강력하게 보복하는 시나리오입니다. 이는 글로벌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 블록화된 세계 무역: 미국의 보호주의 정책이 심화되면서 EU가 다른 파트너들과의 무역 관계를 강화하고, 세계 무역이 블록화되는 시나리오입니다. 이는 규칙 기반 다자무역체제의 약화를 의미합니다.
글로벌 무역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과 같은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다음과 같은 대응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 무역 다변화: 특정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다양한 국가 및 지역과의 무역 관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 부가가치 향상: 단순 수출입보다는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영역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 지역 협력 강화: 역내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글로벌 불확실성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 디지털 및 서비스 무역 강화: 전통적인 상품 무역보다 보호주의 조치의 영향을 덜 받는 디지털 및 서비스 무역을 확대해야 합니다.
결론
트럼프의 무역전쟁 2.0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EU는 협상과 보복, 다자주의와 실용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EU의 경제 관계는 단순한 상품 무역을 넘어 서비스, 투자,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측면에서 깊게 얽혀 있으며, 양측 모두 무역 갈등의 확대는 결국 자신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중국이라는 공동의 도전 요소는 미-EU 관계의 복잡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전략적 경쟁과 협력이 공존하는 이 삼각관계는 향후 글로벌 무역 체제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결국 세계 최대 교역 관계인 미-EU 경제 관계의 향방은 단순히 두 경제권의 문제를 넘어 글로벌 무역 질서의 미래와 규칙 기반 다자체제의 생존에 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비하며 보다 탄력적이고 다변화된 무역 전략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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