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란티어: 미국 최고의 성장주인가, 거품인가? 심층 분석
천리안의 돌로 전쟁과 기업을 변화시키다
2024년 미국 증시에서 가장 뜨거운 기업을 꼽으라면 단연 팔란티어(Palantir Technologies)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작년 한 해 주가가 340% 상승하며 S&P 500 기업 중 상승률 1위를 기록했고, 올해도 실적 발표 후 단 한 달 만에 70% 이상 상승했습니다. S&P 500과 나스닥 100에 연달아 편입되며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한 팔란티어, 그러나 아직도 많은 투자자들은 이 회사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가치평가의 대가 아스워드 다모다란 교수조차 "내가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는 회사"라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팔란티어의 이름은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천리안의 돌 '팔란티르'에서 따왔습니다. 이는 "최고의 힘을 가진 자들이 적을 감시하고 정보를 탐색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마법의 도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회사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반영합니다.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과 현 CEO 알렉스 카프 등이 2003년에 설립한 팔란티어는 911 테러의 충격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제대로 데이터를 분석했다면 911 테러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창업의 계기였다고 합니다.
CIA가 자체 벤처펀드인 인큐텔을 통해 초기에 200만 달러를 투자한 이후, FBI, 국토안보부, 해병대 등 미국 정부 기관들이 주요 고객이 되었습니다. 특히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외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죠. 이러한 배경은 팔란티어의 사업 방향과 가치관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재도 중국, 러시아 같은 반서방 국가의 기업들과는 거래하지 않으며, "서구, 그중에서도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드는 것"을 핵심 미션으로 삼고 있습니다.
온톨로지: 팔란티어의 숨겨진 핵심 경쟁력
팔란티어가 하는 일은 간단히 말해 "복잡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수요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의하고 분석해서 최적의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 데이터를 이해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주체는 공장의 생산 직원일 수도, 군인일 수도, 또는 AI일 수도 있습니다.
팔란티어의 핵심 경쟁력은 '온톨로지(Ontology)'라는 기술에 있습니다. 이는 데이터 하나하나에 의미와 관계를 부여하는 모델링 기법입니다. 예를 들어, 위성이 찍은 지도 데이터는 일반 도로에서 운행하는 자동차와 연결되면 내비게이션 최적화에 쓰이지만, 전장을 정찰하는 드론과 연결되면 적군 위치 파악에 활용됩니다. 이처럼 데이터를 조직의 목표와 규칙에 맞게 평가하고 분류해 의사 결정에 쓸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해 주는 것이 온톨로지의 역할입니다.
또한 각 부서가 엑셀, PDF, 텍스트, 이미지 등 다양한 형식으로 관리하던 정보를 하나의 틀에 통합해 데이터의 입출력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합니다. 덕분에 미국 통신사 AT&T는 새 통신선 설치 위치 결정 과정에서 기존 5년 걸리던 작업을 3개월 만에 끝냈고, 자동차 배터리 회사 클라리오스는 4시간 걸리던 공급망 관리 프로세스를 몇 분으로 단축했습니다.
정부에서 민간으로: 판도를 바꾸는 팔란티어의 확장
팔란티어는 설립 후 첫 10년간 정부 사업 의존도가 높았습니다. 현재도 매출의 55%가 정부 부문에서 발생하지만, 미국뿐 아니라 영국, 우크라이나 등 미국 동맹국들로 고객층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팔란티어의 방첩 소프트웨어 '고담(Gotham)'이 우크라이나 군에 제공되어 "무기 측면에서 열세인 우크라이나가 버틸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팔란티어의 성장 동력은 민간 부문에 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정부보다 민간 부문의 매출 성장률이 더 높으며, 전 세계적으로 민간 기업 고객사가 1년 만에 50%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는 민간 기업에 특화된 운영 체제 '파운드리(Foundry)'와 2023년 출시한 AI 플랫폼 'AIP(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의 성공 덕분입니다.
AIP는 파운드리와 고담의 모든 고객사가 원하는 AI 모델을 통합할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으로, 온톨로지로 정리된 데이터를 AI가 더 효율적으로 분석하고 추론할 수 있게 합니다. 최근에는 제조업에 특화한 운영 체제 '워프 스피드(Warp Speed)'도 출시했는데, 무인 드론 시스템 기업 안듀릴은 이를 통해 공급 부족 대응 능력이 200배 향상됐다고 밝혔습니다. 국내에서도 HD현대중공업, DL E&C, 삼양식품 등이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를 도입했습니다.
팔란티어는 최근 실리콘밸리를 긴장시켰던 중국의 AI 기업 딥시크 사태에 대해 "가장 큰 수혜자"라고 자평합니다. 대형 언어 모델(LLM)이 대량 상품화되면서 성능 격차는 줄고 비용은 낮아지는 추세인데, 이렇게 저렴해진 모델을 활용하는 팔란티어에게는 유리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팔란티어의 AIP는 OpenAI의 GPT, 메타의 Llama 등 고객이 원하는 LLM을 선택해 사용할 수 있게 지원합니다.
주가 폭등의 그림자: 과도한 밸류에이션의 위험
팔란티어의 실적은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습니다. 2020년 상장 이후 연평균 28% 성장해온 팔란티어는 지난 4분기에 매출 성장률을 36%로 끌어올렸고, 영업이익률은 무려 45%를 기록했습니다. 매출 성장률과 영업이익률을 더한 값이 81%로, 성장성과 수익성이 좋다고 평가받는 40%(Rule of 40)를 두 배 넘게 초과했습니다.
또한 팔란티어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표적인 수혜주로 거론됩니다. 국경 안보, 이민자 추방, 국방 관련 지출 증가는 팔란티어에게 더 많은 정부 계약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 효율성 부처'와 도지가 추진하는 AI 기반 효율성 이니셔티브도 팔란티어에게 호재입니다. 팔란티어는 이미 안듀릴, AWS와 함께 국가 안보 강화를 위한 AI 인프라 컨소시움을 구성해 미 국방부 입찰을 준비 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승세 속에서도 가장 큰 우려는 과도한 밸류에이션입니다. 현재 팔란티어의 주가수익비율(PER)은 600배를 넘어, 보통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100배보다 훨씬 높습니다. 향후 12개월 수익 대비 주가도 200배 안팎에 이릅니다. 이 때문에 팔란티어를 커버하는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 22명 중 매수 의견은 단 4명에 불과합니다.
도이치뱅크는 "팔란티어 주가가 내년 매출의 50배를 넘어서는데, 역사적으로 어떤 경우에도 그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 골드만삭스도 팔란티어의 차별화된 기술에 긍정적이지만, 높은 밸류에이션 때문에 중립 의견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팔란티어처럼 새로운 기술을 개척한 기업에 기존 가치평가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데이비슨의 길 누리아 테크 총괄은 "팔란티어는 동종 기업이 없는 회사이기 때문에 비싼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기타 리스크로는 미국 외 시장에서의 성장 모멘텀 부족과 경영진의 지속적인 주식 매도가 있습니다. 카프 CEO는 작년 3개월 동안 4천만 주 이상을 매도했으며, 올해도 9월까지 최대 997만 주를 매도할 계획입니다.
팔란티어가 독보적인 기술력과 시장 지위로 계속해서 성장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주가가 이미 미래 성장을 과도하게 반영한 거품인지, 그 판단은 투자자의 몫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팔란티어가 데이터와 AI의 시대에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주목해야 할 기업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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