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P의 몰락: 석유 거인의 15년 위기와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
영광의 100년에서 연속된 재앙의 15년으로
20세기 초반 중동과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시작한 BP는 한때 글로벌 석유 산업의 거인으로 군림했습니다. 1950년대 'British Petroleum'으로 이름을 바꾸고, 1980년대 민영화를 거치며 런던 금융가의 경제 부흥을 이끌었던 BP는 오랜 영국의 자부심이었습니다. 1990년대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를 확장해 2010년대 초반에는 글로벌 석유 생산량의 2.2~2.3%를 차지하는 대형 석유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 BP의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멕시코만에서 발생한 딥워터 호라이즌 석유 시추 플랫폼 폭발 사고는 11명의 사망자와 함께 역사상 최악의 해양 원유 유출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초기에 수면 위 1마일 넓이, 5마일 길이의 기름띠를 형성했던 이 사고는 BP에게 60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안겼고, 미국 연방 법원은 이 사고가 "중대한 과실과 의도적인 위법 행위"의 결과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재앙적인 사건 이후 BP의 시장 가치는 2010년에 절반 이상 감소했고, 그 후로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경쟁사인 엑손, 쉐브론, 쉘, 토탈의 주가가 지난 5년간 상승세를 보인 반면, BP는 유일하게 5년 전 수준 아래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러시아라는 도박: 생산량의 40%가 하룻밤에 사라지다
딥워터 호라이즌 사태로 큰 타격을 입은 BP에게 두 번째 위기는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010년 CEO로 부임한 밥 더들리는 러시아 최대 석유 생산업체인 로스네프트와 남카라해 시추 계약을 체결하고 서로 주요 주주가 되는 협정을 맺었습니다. 당시 BP의 전체 생산량 중 약 40%가 러시아에서 이루어질 정도로 의존도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과의 긴장이 고조되었고, 결정적으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BP에게 치명타를 입혔습니다. 침공 이후 BP는 러시아 사업을 포기해야 했고, 이로 인해 회사의 생산량은 거의 절반으로 감소했습니다.
반면 BP의 경쟁사인 쉘은 2015년 700억 달러를 들여 영국의 BG 그룹을 인수하며 액화천연가스(LNG)에 대한 대규모 베팅을 했고, 러시아 에너지 접근이 제한된 상황에서 이 전략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런 명암의 차이는 두 회사의 시장 가치에 그대로 반영되어, 2023년 3월 기준 BP의 시장 가치는 약 920억 달러로 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녹색 전환의 함정: 잘못된 타이밍과 시장 변화
2020년, 밥 더들리가 은퇴하고 버나드 루니가 새로운 CEO로 부임하면서 BP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습니다. 루니는 바이오에너지, 전기차 충전, 수소, 재생에너지 등 전환 성장 사업에 대한 투자를 2025년까지 40% 이상, 2030년까지 50%로 확대하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녹색 전환 레토릭은 당시 많은 석유 회사들의 공통된 모습이었고, '그린워싱'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BP의 경우 이 전략은 코로나19 팬데믹과 맞물렸습니다. 2020년 석유 수요가 전년 대비 약 10% 급감하면서 BP는 글로벌 석유 소비가 정점에 도달했다고 예측하며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큰 오판이었습니다. 불과 2년 후인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 특히 유럽은 청정 에너지보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에 우선순위를 두게 되었습니다. BP가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석유와 가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지만, 경쟁사인 쉘이 빠르게 전환 전략에서 후퇴한 반면 BP는 원래 계획을 고수했고 시장은 쉘의 결정에 더 많은 보상을 주었습니다.
월스트리트 전설의 개입: 엘리엇과 생존을 위한 투쟁
현재 BP는 새로운 CEO 머레이 오친클로스 하에서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최근 악명 높은 행동주의 투자자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BP에 상당한 지분을 확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폴 싱어가 설립한 엘리엇은 세계에서 가장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행동주의 투자자로, 거의 50년의 투자 역사 동안 단 2년만 손실을 본 전설적인 성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엘리엇은 기업의 이사회를 완전히 재편하거나, 최고 경영진을 쫓아내거나, 심지어 회사 자체를 분할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들의 관심은 BP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거대한 부채 더미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23년 말 기준 BP의 순부채 대 자본 비율은 약 40%로, 쉘, 토탈, 쉐브론, 엑손을 크게 상회합니다.
이에 대응하여 오친클로스 CEO는 최근 수익 발표에서 현금 흐름과 수익을 늘리기 위한 전략의 근본적인 재설정을 약속했습니다. BP는 인력의 약 5%를 감축하고, 윤활유 사업 매각을 검토 중이며, 이전에 계획했던 석유와 가스로부터의 이탈 계획을 뒤집고, 200억 달러 규모의 자산 매각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가장 극적이고 중요한 변화는 BP의 이사회와 경영진을 향한 엘리엇의 압박일 것입니다. 특히 BP의 회장과 CEO가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영국 자본 시장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불확실한 미래: 기후 전환과 석유 회귀 사이의 딜레마
BP의 사례는 대형 석유 기업, 불운, 기업 재난, 전쟁, 환경 압력이 통제 불가능하게 충돌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지금 월스트리트의 가장 큰 이름 중 하나가 BP를 노리고 있는데, 이는 정치적 세력이 기후 싸움에서 벗어나 더 많은 화석 연료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시점과 맞물립니다.
현재의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향후 5~10년 동안 기후가 여전히 BP와 같은 유럽 기업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인지, 아니면 에너지 안보와 수익성이 우선시될 것인지는 BP의 생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BP의 위기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전환 시대에 석유 산업이 직면한 근본적인 도전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새로운 현실 속에서 BP가 어떻게 변화하고 적응해 나갈지는 앞으로 글로벌 에너지 산업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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