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의 노스텔지어 마케팅: 고물가 시대 식품 기업의 생존 전략
최근 마트에 가보면 OB맥주, 초코파이 같은 친숙한 제품들의 다양한 변주가 눈에 띕니다. 단종됐던 제품이 부활하거나, 옛날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온 한정판 제품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국내 식품 기업들이 고물가 시대에 생존 전략으로 선택한 '노스텔지어 마케팅' 전략입니다. 오늘은 식품 업계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추억팔이 마케팅 트렌드의 이유와 그 효과, 그리고 과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노스텔지어 마케팅이란? 추억을 파는 식품 업계의 생존 전략
노스텔지어 마케팅은 과거의 특정 시기나 공간에 대한 그리움이나 향수를 자극하는 마케팅 전략입니다. 기업들은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과거의 경험이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브랜드나 제품과 감성적 연결을 만들어 판매를 촉진합니다. 어린 시절 먹던 과자가 마트에 다시 등장했을 때 느끼는 반가움을 활용하는 것이죠.
대표적인 사례로 농심의 '농심라면'이 있습니다. 1975년에 출시되어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로 유명했던 이 제품은 당시 레시피를 기반으로 현대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개선해 재출시되었습니다. 또한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지난 1월 '미노스 바나나 우유'를 12년 만에 재출시했습니다. 1993년부터 2012년 단종될 때까지 서울우유의 스테디셀러였던 제품입니다.
롯데웰푸드의 '가나 초콜릿'도 75년, 87년, 2002년 디자인을 각각 적용한 한정판을 출시했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MZ세대에게는 '레트로는 힙하다'는 인식을 통해 소구합니다.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릴스 같은 SNS에서 인증샷을 올리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별도의 마케팅 비용 없이 엄청난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고물가 시대, 왜 기업들은 새 제품 대신 재탕을 선택하는가?
현재 이러한 노스텔지어 마케팅이 식품 업계에서 활발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소비 심리가 얼어붙었고, 기업들은 안전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제품 개발은 상당한 시간과 비용, 그리고 리스크를 수반합니다. 시장 조사부터 시제품 생산, 테스트까지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반면, 과거 인기 제품은 이미 검증된 레시피와 제조 공정, 브랜드 인지도가 존재합니다. 기업들은 기존 레시피를 그대로 활용하거나 약간 업그레이드해 출시함으로써 연구 개발을 최소화하고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습니다. 또한 제품이 비싸더라도 추억이라는 '감성적 가성비'를 충족시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합니다.
더욱이 단종됐다가 재출시된 제품은 '언제 또 단종될지 모른다'는 희소성을 갖게 되어 사재기 심리까지 자극합니다. 실제로 많은 소비자들이 한정판이나 재출시 제품을 평소보다 더 많이 구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미투(Me Too)' 전략도 눈에 띕니다. 농심의 '먹태랑'이 인기를 끌자 3개월 만에 롯데에서 '노가리 청양마요'가 출시되는 식입니다. 이런 품이 제품들이 여러 회사에서 나오면 각 회사의 제품 점유율은 줄어들 수 있지만, 전체 시장은 확대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국내 식품 기업들의 혁신 부재와 R&D 투자 현황
국내 식품 업계가 노스텔지어 마케팅에 의존하는 더 깊은 이유는 혁신 부재에 있습니다. 최근 10년간 식품 업계에서 뚜렷한 흥행작은 불닭볶음면과 허니버터칩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마저도 불닭볶음면은 2012년, 허니버터칩은 2014년에 출시된 제품으로, 이미 10년이 넘은 제품들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주요 식품 기업들의 낮은 연구개발(R&D) 투자와 관련이 있습니다. 국내 식품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용은 대부분 1% 수준에 불과합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제과는 지난해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0.2%, 농심은 1.31% 정도입니다.
연구개발비가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삼양식품조차 전년 대비 126.6% 늘었지만, 금액으로는 58억 원에 불과하며 매출액 대비 0.48% 수준입니다. 하이트진로는 전년 대비 2.6% 늘어난 47억 원을 연구개발비로 사용했으나, 이는 매출액 대비 0.2%에 불과합니다.
일각에서는 국내 주요 식품 기업들이 상품 개발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고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착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소비자들은 새로운 제품보다 익숙한 맛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년 소매점 매출 순위를 보면 농심 새우깡, 롯데 포카칩, OB 초코파이 등 1970-80년대에 출시된 장수 브랜드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라면 순위도 신라면, 짜파게티, 진라면 등 오래된 제품들이 불닭볶음면을 제외하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성장의 돌파구, 글로벌 시장을 향한 K-푸드의 도전
식품 업계가 진정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 진출이 중요한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성공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연결 기준 해외 매출이 전년 대비 65% 증가한 1조 3천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2016년 주가 900원대였던 삼양식품은 불닭 열풍으로 2020년 3천억, 2022년 6천억, 2023년 8천억의 매출을 기록하며 지난해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삼양식품의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이 77%를 차지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국내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한국 식품의 해외 진출 성공 사례는 다양합니다. 삼양의 불닭볶음면 외에도 농심 도시락이 러시아에서, 롯데제과 초코파이가 베트남에서, 동아제약 박카스가 캄보디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특히 박카스는 캄보디아 음료 수입 1위 품목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런 성공은 각 지역 소비자의 입맛과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현지화 전략이 중요함을 시사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푸팟퐁커리 불닭이, A사에서는 낮은 맵기의 버전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각 국가와 소비자의 선호도를 반영한 맞춤형 전략이 필요합니다.
노스텔지어 마케팅의 한계와 미래 혁신의 필요성
노스텔지어 마케팅이 단기적으로 효과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마케팅이 한순간의 특수로 그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옛 제품만 리패키징하면 소비자들은 "이 회사는 옛날 것만 한다" 또는 "새로움이 없다"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재출시 제품들이 단기적인 인기 후 다시 단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리온 초코송이 딸기맛은 2022년 한정판으로 나왔다가 지속 수요 부족으로 현재는 봄 한정판으로만 출시됩니다. 롯데제과의 조스바, 스크루바, 수박바 풍선껌도 2020년 한정 출시 후 시장에서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오리온 와클은 15년 만에 재출시되어 10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780만 개, 매출액 60억 원을 달성했지만 다시 단종되었습니다.
식품 산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신제품보다 기존 맛과 향, 느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 성장을 위해서는 혁신과 새로운 시도가 필요합니다. 현재 국내 식품 기업들은 개인 맞춤형 제품, 프로틴 간식, 제로 칼로리 제품 등 새로운 소비 트렌드에 대응하는 제품 개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노스텔지어 마케팅은 고물가 시대 식품 기업의 생존 전략으로서 단기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 성장을 위해서는 R&D 투자 확대, 글로벌 시장 진출 강화, 그리고 소비자 트렌드를 반영한 혁신적인 제품 개발이 필수적입니다.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닌, 과거의 성공을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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